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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비건? 그린 워싱? 비건 스테이가 뭔데요?

패션 비건일까? 친환경 실천일까? 비건 콘셉트 룸에서의 1박 2일.

BYBAZAAR2021.12.01
편안한 숙박 되셨습니까? 비건 룸은 이번에 저희가 처음 선보이는 객실인데 어떠셨나요?
대답을 기다리는 직원에게 애매모호한 웃음을 흘리며 돌아섰다. 좋다 나쁘다 뭐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비건 콘셉트 룸에서의 하룻밤은 그만큼 미묘했다.
 
내가 비거니즘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2002년, 이제는 명저가 된 〈음식혁명〉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저자 존 로빈스는 배스킨 라빈스의 상속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유제품, 축산물의 폐해를 낱낱이 폭로한 환경운동가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고기와 유제품을 과도하게 소비하면 인간이 어떻게 건강을 위협받는지, 그 고기를 만들기 위한 공장식 농장이 얼마나 비인도적이고 비위생적인지, 그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료가 필요하고 그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지 힘주어 말했다. 육식주의 청소년이었던 내가 부모님께 고기를 먹지 않겠다 선언한 건 그 때문이었다. 좁고 더러운 우리에서 평생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참혹하게 죽어가는 소의 커다란 눈이 담긴 삽화가 며칠 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은커녕 일주일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거실에서 열린 삼겹살 파티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 후로 나는 다시는 채식주의라는 단어를 입 밖에 올리지 않았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비거니즘은 그런 게 아니다. 동물 인권에 호소하는, 변절해서는 안 될 확고한 신념라기보단 환경과 건강을 위한 모두의 라이프스타일로 인식이 확장되었다. 일단 숫자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축산업은 지구 전체 온실가스의 18%를 배출한다. 전 세계 교통수단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인 13.5%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소의 트림과 방귀는 이산화탄소보다 21배 강력한 메탄을 발생시킨다. 소 한 마리가 배출하는 분뇨는 사람 16명 분에 이르고 이산화탄소의 3백10배에 해당하는 이산화질소도 발생시킨다. 폴 매카트니가 두 자녀와 제안한 ‘고기 없는 월요일’ 캠페인만 봐도 그렇다. 폴은 2009년 기후변화협약을 위한 유럽의회에서 일주일에 하루 동물성 제품을 건너뛰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호소했다. 영국의 모든 사람이 하루 동안 고기를 건너뛴다면 모든 차가 하루 종일 도로에 나오지 않는 것보다 탄소발자국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다고. 정확히 말하면, 1인당 연간 2268kg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완벽한 비건 한 명보다 어설픈 비건 열 명이 훨씬 낫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호텔들의 ‘비건 스테이’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비건 화장품을 어메니티로 제공하거나 브랜드 텀블러를 증정하는 걸 정말 친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궁금했다. 8월 말부터 워커힐 그랜드 서울에서 선보이고 있는 비건 콘셉트 룸이 객실의 가구와 침구, 어메니티는 물론 인룸 조식과 웰컴 와인까지 모두 비건으로 이루어졌다지 않나. 내돈내산으로 숙박을 결심했다. 패션 비건일까, 진정성 있는 친환경 실천일까?
 
이 호텔의 8층, 그 중에서 패밀리 디럭스 스위트 룸 3개가 비건 객실로 운영된다. 복도 가장 끝 방 824호. 플라스틱이 아닌 우드 재질의 카드키로 룸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식물벽이었다. 처음엔 장식용 조화인 줄 알았으나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공기 정화와 가습기 역할을 하는 스마트 그린월이었다. 시리도록 하얀 식물 조명 아래 스킨답서스와 레몬서프라이즈가 극도로 새파란 색을 뽐내며 한쪽 벽을 무성히 채우고 있는 풍경이 난 왜 그렇게 불편했을까. 그린월 앞 리빙 테이블에는 비건 와인 ‘안델루나 1300 말벡 2018’이 놓여 있었다. 가성비 와인으로레스토랑에서 종종 마시던 그 와인. 이게 비건 와인이라고? 가만, 모든 와인은 원래 식물성 아닌가?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비건 와인은 내추럴 와인과 함께 유기농 와인의 한 종류다. 재배 및 생산 과정에서 동물성 원료와의 접촉을 차단한 와인을 의미하는데, 이를테면 와인 양조 과정에서 필터링을 위해 전통적으로 달걀 흰자가 사용되지만 비건 와인은 이를 대신해 종이 펄프로 필터링을 하는 식이다. 와인은 예상대로 훌륭했다. 원래 ‘최고의 맛은 내가 아는 맛’이라고들 하지 않나.
 
체크인 시 증정받은 멜릭서의 선크림과 립밤 패키지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세면실에 비치되어 있는 옥수수 전분 소재로 만들어진 머리빗과 칫솔 그리고 다섯 알의 고체 치약은 꽤 물건이었다. 일반 플라스틱과 비교하자면 낯선 재질인데 거칠거칠한 촉감과 미색의 컬러톤, 심플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룸 슈즈는 천 소재, 런드리 백은 종이 소재였다. 여러모로 플라스틱 절감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고 생각하다가 눈을 돌리니 다시 그린월이었다. 식물 잎사귀를 손으로 살짝 젖히면 그것들이 담긴 거대한 검정색 플라스틱판이 만져진다.
 
비건 룸에서의 1박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스툴, 쿠션 등 이 방에 들어가는 모든 가죽이 닥나무 소재의 한지 가죽으로 되어 있다는 안내 문구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자가발전 자전거에는 다시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굳이?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연출한 김가람 피디는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꾸 뭔가를 사는 걸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돈을 주고 친환경 브랜드를 사는 건 쉽다. 하지만 뒷이야기는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친환경 소비는 친환경이 아니다. 직업이라는 건, 자존심을 걸고 하는 일이지 않나. 패션업계에서 ‘친환경’이라는 라벨을 붙여서 뭔가를 하는 분들이, 자신의 브랜드와 이름을 걸고 ‘진짜 친환경’이라고 할 만한 걸 좀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호텔업계에도 그녀의 말을 전하고 싶어졌다. 영국의 사보이호텔처럼 호텔 내부에서 발생하는 각종 음식 폐기물을 땅에 묻는 대신 재생에너지로 변환해 사용하라는 거대한 제언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전 객실에 옥수수 전분 머리빗을 일회용 비닐이 아닌 천으로 감싸 비치한다면? 칫솔에 동봉되어 있어서 사용하지 않아도 그대로 버려지는 미니 페리오 치약을 상시로 두지 않고 프런트로 요청한 고객에게만 따로 제공한다면?
 
다음 날 제공하는 인룸 비건 조식은 세 가지 메뉴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나는 클렌즈 주스와 건강식 무농약 야채 샐러드, 워커힐 비건 브레드와 딸기잼, 수제 유자 그레놀라와 두유, 신선한 계절 과일과 커피가 포함된 A세트를 택했다. 어떤 건 입에 맞고 어떤 건 그렇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지난 한 달간 내 입 속에 들어간 어떤 식재료보다도 신선했다는 점이다. 식사를 마치고 어질러진 타월과 티슈, 뜯겨진 각종 포장지, 널브러진 샤워 가운과 구겨진 침대 시트를 잠시 바라보다가. 824호 문을 닫고 길게 난 복도를 걸었다. 밀려드는 허무함에 말랐다. 1층 카페테리아에서 따듯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누런 재생종이 컵과 누런 재생종이 리드를 누런 재생종이 캐리어에 담아주며 직원이 그랬다. “손님, 재생종이 소재이다 보니 결합이 다소 헐거울 수 있어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덜그럭거리는 커피를 들고 호텔을 나서며 생각했다. 조금 불편할지라도, 별로 근사해보이지 않을지라도 계속 해나가는 것. 그래, 그거면 되지 않겠느냐고. 어쩌면 우스꽝스러운 자가발전 자전거와 내내 시선을 강탈하는 그린월 때문에 이 호텔의 노력을 줄곧 폄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젯밤 읽었던 책 〈비거닝〉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패션으로써 비건을 흉내낼 뿐 ‘진정한’ 비건이 아닌 사람들을 비난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흉내내기도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인생은 결국 습관의 모음이다. 부분적으로 시도하는 사람들을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하기보다는 궁극에는 함께 갈 동지로 보는 게 낫다. 완벽한 소수가 투쟁하며 희생하는 사회보다는 불완전한 다수가 공감하며 연대하는 사회가 구조를 바꾸기 더 쉽다. 작심 3개월, 아니 작심 3일도 좋다. 실패하면 또 작심하면 된다.”
 
그린 스테이 리스트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객실 내 전구를 절전형 LED로 교체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객실과 수영장에서 배출하는 생활하수는 정화하여 화장실 및 청소 용수 등으로 재활용하며, 음식물 쓰레기는 비료로 재가공한다.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 부산 송도 비치는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을 독려하는 ‘그린 러너 패키지’를 출시했다. 캔버스 백팩, 생분해 비닐봉지, 장갑으로 이루어진 플로깅 키트와 추천 플로깅 코스 지도가 제공된다. 플로깅을 완료하고 주운 쓰레기를 인증하면 아메리카노 2잔과 주중에 한해 2시간 레이트 체크아웃을 제공한다.
 
호텔 카푸치노에서는 여분으로 제공하는 어메니티를 사용하지 않으면 엔젤 쿠폰을 받는다. 이 쿠폰을 프런트 데스크에 제출하면 비영리단체 ‘Water.org’에 기부 또는 카페 카푸치노 커피 한 잔으로 교환할 수 있다.
 
메종 글래드 호텔이 출시한 ‘그린 호캉스 시즌2 패키지’는 주차가 불가능하다. 지구를 살리는 캠페인의 일환이므로 자가용 대신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패키지를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