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돌연 패션계를 떠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이자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가 시각예술가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타나지 않음’으로 ‘나타났다’.
지금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마틴 마르지엘라의 대규모 개인전은 한 편의 무언극이라고 보아도 좋다. 인체의 일부를 3D로 스캔하여 만든 6개의 조각 〈토르소 시리즈〉 사이에 흰색 가운을 입은 스태프가 상주하며 조각 위에 흰 천을 덮어 감추었다가 열었다를 반복한다.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르지엘라가 언젠가 남긴 이 아포리즘을 상기한다면 공연의 의도가 ‘은폐의 미학’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 〈데오도란트〉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체취를 의도적으로 감추고 지우는 일상적 매개를 통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위생에 대한 강박? 산업화된 신체? 변형에 대한 본능? 원래 마르지엘라는 얼굴 없는 디자이너로 유명했다. 익명성은 그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지만 고도의 마케팅이라는 속물적 오해로부터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마르지엘라는 이에 대하여 미셸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인용하며 항변한다.
얼굴을 갖지 않기 위하여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기를, 내게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지 말기를.
〈Red Nalis Model〉, 2021(좌), 〈Red Nails〉, 2019.(우)
2008년 그가 ‘은퇴’라는 단어를 끝으로 패션계를 완전히 떠난 뒤 한동안은 소문만 무성했다. 파리의 거리에서 60대 그의 얼굴을 알아본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고 어쩌면 그가 새로운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그러나 그의 세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시각예술가로의 전환을 당연하게 여겼다. 1993년부터 2008년까지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였던 패트릭 스칼롱은 〈뉴욕 타임스〉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쇼에 대한 접근법, 초대장, 의상. 마르지엘라의 그 모든 것은 항상 예술적이었다.” 2021년 프랑스 파리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에서 마틴 마르지엘라의 첫 번째 개인전을 기획한 레베카 라마슈 바델 역시 “그는 언제나 예술가였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나는 2008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스튜디오가 앤디 워홀이 창간한 잡지 〈인터뷰〉에서 개념미술가 조셉 코주스 스튜디오와 나눈 대화를 들추어 보며 시각예술가로의 전환이 그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음을 뒤늦게 감지했다. 인터뷰에서 마르지엘라 스튜디오는 벼룩시장에서 1950년대 야구점퍼 재고 무더기를 발견한 일을 언급한다. 그들은 그것들을 자르고 트고 묶어서 티셔츠나 청바지와 결합했다. 1980년대였다. 사람들은 옛 옷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당연히 틀렸다. 낡고 버려진 옷을 독특한 조각으로 재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일. 그들에겐 그것이 존중이었다. 마르지엘라 스튜디오는 훗날 아티저널(Artisanal) 컬렉션의 시초가 된 이 아이디어의 근원이 앤디 워홀이라고 밝힌다.(1975년 앤디 워홀은 프라다, 구찌, 베르사체 조각을 하나로 꿰매어 일명 ‘복합 드레스’를 만들었다.) 워홀이 그랬던 것처럼 마르지엘라에게 패션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실현하는 하나의 장르이자 매개체였던 것이다. 소외된 것 혹은 소외시킨 것에 어떤 존엄성을 부여하느냐는 오래도록 그를 따라다닌 예술적 명제다.
〈Torso Series〉, 2018-2022.
그리고 이제 마르지엘라는 패션의 범주를 넘어 50여 점의 조각과 콜라주, 회화, 설치, 비디오를 통해 ‘예술, 물질과 신체, 성별의 관념, 시간의 영속성, 직접 참여’에 대해 사유한다. 이를테면 모발로 얼굴이 덮인 조각 〈바니타스〉는 작가가 인공 피부를 입힌 실리콘 구체에 자연 모발을 하나하나 이식하여 완성했다. 마르지엘라의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머리카락, 체모는 그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다. 진한 금발에서 백발까지 머리카락 색상이 다른 5개의 두상은 한 인간의 유년부터 노년까지의 생애 주기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염색약이라는 일상품을 통해 노화의 흔적을 감추려 하지만 종국에는 시간 앞에 패배를 인정하고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 마르지엘라는 첫 번째 전시에서 큐레이터에게 마지막 백발의 그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넌지시 말했다고 한다. 그 담담한 사랑 고백이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작가의 방식이라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어원을 가진 바니타스 나무판 위에 덩그러니 놓인 5개의 두상을 응시하다 불현듯 자신에게 돌진하는 죽음의 필연성을 각성하는 것은 관람객의 방식일 것이다.
한편, 어떤 머리카락은 ‘죽음’이 아닌 ‘삶’이 된다. ‘지도 제작법’이라는 뜻의 〈카토 그래피〉는 작가가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방향을 연구한 작품이다. 사람의 모발은 제각기 수많은 유전적 단서와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으므로 두피의 정수리는 존재의 기억과 경험이 저장된 하나의 지도와 같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자신만의 지도를 이고 있는 셈이며 거기엔 시간의 궤적이 고스란히 새겨 있다. 심지어 먼지와 긁힌 자국 같은 아날로그 필름의 자연스러운 흔적을 마치 우주 공간처럼 표현한 〈필름 더스트〉 시리즈에서는 생명력을 실감한다. 삶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너절한 먼지 더께를, 가끔은 나조차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누추함을, 그 지긋지긋한 생명의 기운을. 은폐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체모’는 드러내고 당연히 드러난 ‘얼굴’은 감춘다. 나조차 자세히 들여다본 적 없는 ‘정수리’를 연구하고 평소라면 무참히 잘려나갔을 필름 끄트머리의 ‘먼지 자국’을 화면에 수놓는다. 한 해의 시작, 마틴 마르지엘라의 능란한 은폐술을 통해서 살아있음의 궁극을 사색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름다움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아름다움인데도.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아름다움은 그러한 상황에서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속성이다.
- 마틴 마르지엘라. 〈Self-portrait〉, 2021. © Martin Margiela
결코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그가 2022년 12월의 끝자락 프랑스 파리에서 특별한 편지를 보내왔다. 〈바자〉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구혜진 수석 큐레이터와 마틴 마르지엘라의 대화.
2021년 프랑스 파리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중국 베이징 엠 우즈 그리고 대한민국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전시에 대한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래전 한 번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미술관과 갤러리 현장을 직접 보고 특히 놀랐습니다. 한국 미술계의 취향과 미학이 마음에 들었고 어떤 면에서는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죠. 그 후에도 번창하는 한국 미술계에 대한 글을 계속해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롯데뮤지엄에 초대받았을 때 영광스럽고 매우 기뻤습니다.
2008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20주년 기념 쇼를 마지막으로 패션계를 은퇴한 이후 시각예술 작업에 전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당신의 결정은 패션계에서 일종의 한계를 계속 느껴왔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결심한 그 순간에 무엇이 원동력이 되었는지, 또한 그 이후, 당신의 첫 번째 개인전 «Martin Margiela at Lafayette Anticipations» 전시를 시작하면서 시각예술 아티스트로서 어떤 스타일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패션계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더욱 다양한 재료와 매체입니까?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주제는 변함없지만 패션이라는 하나의 포맷을 마침내 벗어난 당신의 아이디어입니까?
2008년 패션계를 떠난 후, 시각예술 아티스트로서 저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거의 10년 동안 제 작품들은 완전히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아무도 볼 수 없었죠.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에서 전시 제안이 왔을 때, 저는 지금이 적기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일 준비가 되었죠. 게다가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의 작업실에서 작품 제작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받으며 아무런 규제 없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라는 엄청난 특혜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지원 덕분에 마침내 조각과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의 디렉터와 큐레이터를 비롯해 모든 팀원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도 있었고요. 시도해보지 못했던 기법과 재료를 활용해서 심도 있게 실험할 수 있었습니다. 경이롭고 즐거운 발견과 배움의 과정이었어요.
전시공간은 마치 미궁과 같은 형태로 보입니다. 수없이 많은 벽과 커튼이 나아가는 길을 막고, 모호한 형체를 만들며 끝없이 이어지는 미지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것을 숨기고 어떤 것을 발견하게 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도요. 특히 롯데뮤지엄은 길고 좁은 통로와 넓은 전시공간이 교차하며, 실제로 길을 잃거나 미로처럼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은 곳입니다. 이 공간이 당신에게 어떠한 느낌과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의 건물에는 층마다 개방된 공간이 있기 때문에 관람객이 전시 작품을 한 점 한 점 가까이 접하고 발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디렉터 겸 큐레이터 인 레베카 라마슈 바델은 이 통로를 ‘미로(labyrinth)’라고 표현했죠. 관람객의 반응이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베이징의 엠 우즈 전시에서도 동일하게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롯데뮤지엄의 평면도를 처음 보는 순간 또 다른 ‘미로’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죠. 작품을 서로 간격을 두고 배치해서 휴식을 취하고 작품을 반추할 수 있는 공백의 순간을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전시에 항상 사용하는 버티컬 블라인드는 벽처럼 완벽히 차단하지 않으면서 가리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Hair Portraits〉, 2015-2022.
첫 개인전인 파리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 전시를 위해 그곳의 지하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항상 팀으로 일해왔으며, 어쩌면 그 과정은 당신에게 있어서 익숙한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을 위해 함께 일하는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이 과정에서 새롭게 영감을 받기도 하나요? 극복해야만 했던 순간도 있습니까?
평생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들이 결국에는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처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해결책을 창안하게 해준 원동력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작품을 통해 우리 주변의 평범한 물건들을 새롭게 돌아보게 합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또 다른 사명을 부여받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발견의 과정은 때로는 당신의 일상 속에서 우연히 일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의 관찰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당신의 질문 안에 정확히 제 대답이 담겨있어요.
당신에게 흔적과 시간은 많은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거나, 쇠퇴하거나, 소멸하여 부재하거나 침묵하는 것에 대한 남다른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간과 그 흐름에 대하여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까? 특히 부재의 흔적으로 완성되는 〈팬텀〉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젊은 시절 겪었던 경제적 결핍은 제 창의력의 가장 풍부한 원천이 되었고 시간의 흔적과 아름다운 고색창연함이 서린 빈티지 의상과 가구를 재활용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부재의 흔적’이라는 〈팬텀〉 시리즈에 대한 당신의 묘사가 마음에 드는군요. 저는 이 작품들의 실체보다 작품의 그림자가 불러오는 호기심을 좋아합니다. 관람객이 작품 설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사고방식으로 머릿속에서 작품을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전시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한국의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로부터 전시에 대한 문의 메일이 쏟아졌습니다. 국내외 많은 아티스트들이 당신을 존경하고 선망하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조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건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예술 철학을 고수하는) ‘고유성(Authenticity)’*입니다.
※ «마틴 마르지엘라»전은 2023년 3월 26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열린다.
*미학에서의 고유성(본래성)은 예술가 스스로가 바라보는 예술에 대한 관점에 충실하는 것이며,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요구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의 욕구, 동기, 이상과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를 진실로 표현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