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드 베스트는 Gucci.
오늘 화보는 이중성을 주제로 아이유와 이지은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포착하고자 했다. 여유로운 얼굴로 촬영을 다 끝내고 나서 “오늘 촬영, 솔직히 어려웠다”고 고백하듯 털어놓았다.
사실 구찌와의 작업은 항상 어렵다. 실험적인 옷, 장면, 메시지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특히 오늘은 저의 다른 자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게 목표였지 않나. 밀라노에서 2023 S/S 컬렉션을 보고 굉장히 충격적이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있다 보니 컬렉션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이번 화보 콘셉트에 대해서 듣고 아, 쉽지 않겠구나 싶더라.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다. 이렇게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도 처음 시도해보았고 화보 구성이나 소품, 스튜디오 공간까지 여러모로 신선한 기획에 참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마지막 컷은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을 한 아이유가 민낯에 가까운 이지은의 벽보가 잔뜩 붙은 가벽 앞에 서 있는 장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벽보 사진이 오늘 촬영 분인 줄 모르고 〈페르소나〉 ‘러브 게임’ 스틸컷 정도로 추측했었다. 당신에게 여러 종류의 얼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러 시간대의 얼굴도 있다는 걸 실감했달까.
아까 대기실에서 우리 스태프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지금은 진한 스모키 화장을 했지만 아까는 메이크업을 최대한 덜어내기도 했고. 아침이라 부은 게 젖살 느낌이 나면서(웃음)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인화한 사진을 보고 나도 예전 생각이 나더라.
구찌와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지속하고 있다. 아이유라는 아티스트의 성향을 미루어본다면 구찌라는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동행이라고 생각한다. 구찌와 아이유의 예술적 비전은 어떤 지점에서 일치할까?
구찌는 다양함을 중시하고 정제되지 않은 어떤 것에서 미학을 찾는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굳이 나와 닮은 점이라면 그 부분이 아닐까. 나 역시 결론에 도달하지 않은, 미완의 과정에서 든 생각과 감정을 가사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작업하니까.
말한 대로 당신은 언제나 그 당시의 스스로를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용감하다. 연예인으로서 대중에게 완벽하게 꾸며진 모습만을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은 없나?
어릴 때는 진짜 뭘 몰랐다.(웃음) “지금 제 생각은 이래요”, “지금 저는 이런 나이예요”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이라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한편으론, 어릴 때부터 내가 깎아놓은 듯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지가 있었다. 그건 흉내 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 직업을 업으로 삼은 이상 나로서는 승부를 보아야 했고 나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쪽으로 수를 둔 측면도 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 와서는 나를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의 소소한 활동도 같은 맥락일까. 밀알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을 위해 부른 등하교가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 ‘밤편지’의 김제휘 작곡가가 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점을 노래로 만들었고 거기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건데.
제휘 씨는 음악적인 재능을 차치하고도 소중한 친구다. 처음엔 이 친구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길래 잘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붙임성 있게 잘 적응하더니 급기야 “누나, 학교에 노래를 선물하고 싶어요”라고 하기에 기특한 마음에 응원해주고 싶었다. 솔직히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지만 우스갯소리로 “내 앨범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열심히 녹음하긴 했다. 학생들이 들으면서 기분 좋게 등교할 수 있게. 힘이 나도록.
재킷, 보 디테일 셔츠, 팬츠는 모두 Gucci.
크롭트 재킷, 보 디테일 셔츠, 팬츠, 오픈 토 펌프스는 모두 Gucci.
금장 장식 벨트가 돋보이는 재킷, 팬츠, 프린지 디테일의 헤드피스는 모두 Gucci.
아이유와 박보검 그리고 〈쌈, 마이웨이〉 임상춘 작가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곧 사전 제작에 들어간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작품이 공개되면 모두가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아, 나라도 하고 싶었겠구나’. 임상춘 작가님의 전작들을 워낙 재미있게 본 데다가 이 작품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신선했다. 그저 활자일 뿐인데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니, 나 역시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가님의 재능이 부러울 정도였다. 담고 있는 주제도 좋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전달한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당신이 맡은 애순은 ‘반항할 때부터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리는, 가난하지만 속은 당찬 문학 소녀’다. 이번 작품이 〈호텔 델루나〉 이후 4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인데, 그때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호텔 델루나〉의 만월은 확실히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데 애순 역시 독특한 지점이 있다. 애순이야말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으로서의 개별성이 눈에 띄는 인물이랄까? 나는 그런 결의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다.
어떤 연기자들은 자신이 맡은 인물 안에서 자신을 찾는 방식으로 몰입한다. 당신도 그런 편인가? 애순과 아이유는 얼마나 닮아있나?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결의 인물도 분명히 있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선뜻 그 작품을 고르진 못할 것이다. 자신감의 문제다. 지금까지 내가 연기한 캐릭터는 어느 지점에서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애순은 지금까지 연기했던 그 어떤 인물보다도 나와 닮았다. 작가님께서 관찰력이 대단하시다. 내가 갖고 있는, 그러나 너무 드러나있지 않은 특징을 인물에 녹여내고 싶다고 하셨다. 실제로 대본을 보고 나서 “어머, 저한테 이런 모습이 있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할 정도였다.
〈나의 아저씨〉에서 〈호텔 델루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브로커〉에서 〈드림〉이라니. 드라마든 영화든 그 다음 행보가 매우 과감하달까. 전작과는 다른 작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작품을 고르는 제1의 기준인가 싶을 정도다.
긴 머리도 오래하다 보면 염색도 하고 커트도 하고 싶어지지 않나. 기준은 아니지만, 거의 몇 개월 이상 한 인물로 살고 나면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것 같다.
단발도 하고 싶고 쇼트커트도 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을까봐 평생 긴 머리를 고수하는 사람이 다수이다.
그런데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해야 한다.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쪽이 훨씬 견디기 쉽다.
배우로서의 자아와 가수로서의 자아를 분리하는 쪽은 아닐 거라 추측한다. 콘서트 전날과 크랭크인 전날의 마음 상태는 어떻게 같거나 다른가?
콘서트 무대가 관객들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 한 단 한 번의 기회만이 주어지는 생방송과 같다면, 촬영 현장은 감독이나 상대 배우와 그때그때 의견을 교환할 수 있고 여러 테이크의 기회 중 가장 최선의 결과물을 관객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같은 전제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된 후 얼마간 긴장 속에 줄곧 혼자라고 느끼던 중 마침내 관객과 동화되는 벅찬 순간과 낯선 촬영 현장의 많은 사람들이 어느새 공동의 목적을 가진 한 팀이 되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우리가 진정으로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은 매우 닮아있다. 두 분야 모두 나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노래를 할 때건 연기를 할 때건 나는 그저 순간순간 내 몫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재킷, 팬츠, 보 디테일 셔츠, 로퍼는 모두 Gucci.
라이닝 디테일의 베스트, 쇼츠, 양말, 로퍼는 모두 Gucci.
지난해 데뷔 14주년 기념 콘서트 〈The Golden Hour: 오렌지 태양 아래〉에서 “10대 때부터 제가 도전해오고 달려왔던 무대가 정말 마지막 도착지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 이게 새로운 출발점,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원래 어디든 정착하면 편한 법이다. 그런데도 줄곧 어딘가로 걸어가고자 한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 건가?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20대 때는 그 ‘방향성’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그 당시 나로 하여금 ‘피가 돌게 하는’ 주제였달까. 그 열렬한 고민들이 즐겁기도 했지만 솔직히 피곤하기도 했다. 30대가 되고 나서는 특별히 방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다.
그 표현이 정확하다. 부유한다. 이 자체가 30대인 지금의 방향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 내내 ‘이 마음을 유지하고 싶다’, ‘이렇게 사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다. 한편, 마음을 편하게 먹은 것과 별개로 재미있는 이벤트가 팡팡 터진 한 해였다. 20대 내내 ‘내가 무언가를 놓치면 세상은 늘 다른 걸 손에 쥐여주더라’는 생각에 얽매여 있었다. 그런데 아득바득 쥐고 있던 걸 탁 놓고 나니까 세상이 쥐여준 그 ‘다른 것’은 의외로 그런 사건들이었다. 마음을 비우니 세상이 재미있는 걸 채워주더라.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서 뒤돌아보면, 나의 30대에는 갈피가 꽂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14년간 당신은 노래하거나 공연하거나 팬들과 소통하거나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던 인상이다. 당신에게 쉼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쉼의 개념을 잘 모르겠다. 몸이 쉬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충전된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넓은 의미로 쉼이 곧 해소나 충전이라고 본다면 내 안에 쌓여 있던 게 가장 시원하게 해소될 때는 역설적이게도 일할 때다. 쾌감이 들 정도로 스스로 만족스럽게 일을 해냈을 때. 그때는 몇 날 며칠을 집에서 누워 있기만 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개운하다고 느낀다. 그게 아니면 아예 일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몰두할 것이 있어야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그 정도로 좋아하는 게 많지는 않다. 당장 떠올려보자면 숙면했을 때, 유인나 씨와 밀린 수다 떨 때, 나를 깊이 이해해주는 친구나 연인과 실없이 장난치고 웃을 때, 인생 영화를 다시 볼 때, 진짜 맛있는 걸 먹을 때 정도일까. 살다 보니 나처럼 일종의 정신적 휴식이 덜 필요한 부류도 꽤 있더라. 하지만 체력은 또 다른 이야기이므로 30대에 접어들면서 더 달려야 할 때를 위해서라도 관리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 쉴 수 있을 땐 최대한 누워서 시간을 보내며. (웃음)
당시 콘서트에서 “오늘을 되새기며 14년 더 가볼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14년 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있나?
그때 당시 기준으로 44살의 나를 그려보자면… 여전히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 외의 것들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변하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고 본다면 말이다. 이를테면 14년 전과 지금 나를 구성하는 생각은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패턴 장식의 칼라가 돋보이는 재킷, 셔츠는 Gucci.
트위드 드레스, 체인 스트랩의 숄더백은 Gucci.
변한다는 건 유연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쪽이라.
그 말에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14년 전을 기준으로 하자면 나는 경쟁을 싫어하고 승부를 피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일기를 보면 “나는 경쟁사회가 너무 힘들다. 승부욕이 없어서 걱정이고, 승부가 싫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데뷔 후 14년 내내 승부를 즐기고 있었다. 사실은 승부에 미친 사람 아니야? 할 정도로. 어쩌면 승부욕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거나 일부러 부정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쪽이든 간에 갓 데뷔한 어린 소녀가 ‘나는 경쟁이 싫다’고 일기장에 끄적거렸을 모습이 안쓰러운데, 이제는 꽤 변한 아이유가 그 당시의 아이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세상에 정나미가 떨어지더라도 사람끼리는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다. 팍팍한 세상에서 본인이 믿는 희망은 여전히 사랑인가?
말로 내뱉자면 낯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미움을 이긴다고 믿는다. 결국에는 사랑이 이긴다. 내가 중심을 잃고 흔들릴 때도 ‘그치만 결국 사랑이 이길 텐데’라고 되뇌며 논리를 갖추거나 생각의 근육을 키우거나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사랑이 이긴다는 명제는 내 삶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믿고자 한다.
싱어송라이터는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음악이라는 결과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특히 당신의 음악에서 가사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요즘 당신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노랫말은 무엇인가?
너무나 어이가 없게도 방금 기자님과 이야기한 그것에 대해서 쓰고 있다. 사실 부유라는 단어가 나와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목적지 없이 부유하는 것. 다음 앨범의 주제가 될 것 같다.
‘이중성’이라는 오늘 화보 콘셉트로 다시 돌아오면, 당신은 아이콘 아이유와 일반인 이지은 두 가지 자아를 모두 충실히 살아가는 느낌이다. 이 균형은 어떻게 유지되나?
조금 불편하지만 날 빛나게 해주는 예쁜 옷과 조금 평범하지만 날 자유롭게 해주는 편한 옷을 시기에 맞게 갈아입으면서, 순간순간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경계하는 것이 균형을 잡는 방법인 것 같다. 난 빛날 때도 있고 평범할 때도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나의 일기장 안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지금의 당신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장은 무엇인가?
플라워 패턴 드레스, 이너 슬립 드레스, 싱글 귀고리는 모두 Gucci.
※ 화보에 촬영된 제품은 모두 가격 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