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스미스가 바라본 자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키키스미스가 바라본 자연

키키 스미스의 개인전 «Spring Light»를 보면 누구든 반쯤 시인이 될지 모른다.

BAZAAR BY BAZAAR 2023.06.10
〈Barred Spiral Galaxy〉, 2022, Ink and acrylic paint on paper, 62.9x44.6cm.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Barred Spiral Galaxy〉, 2022, Ink and acrylic paint on paper, 62.9x44.6cm.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지금 키키 스미스의 개인전이 열리는 페이스 갤러리에는, 강물에 비친 윤슬과 우주의 별빛 같은 잔잔한 풍경이 생동한다. 체액과 혈흔, 곰팡이를 재료 삼아 애브젝트 아트(Abject art)라는 전위적인 방식으로 예술을 하던 그가 자연에 시선을 돌린 지 20여 년이 흘렀다. 논란을 부르는 작품을 선보이던 시절에도 “나의 모든 작품은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촉발된다”라고 말하며 줄곧 정치적이거나 교훈적인 메시지와 거리를 둔 그였다. 그 철학과 어우러지는, 신작을 대거 포함한 작품 60여 점이 전시장에 펼쳐진다.
 
〈Winter Twilight〉, 2023, Aqueous archival inkjet, Acrylic archival inkjet, White gold leaf on Hahnemüle rag paper, 152.4x109.2cm.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Winter Twilight〉, 2023, Aqueous archival inkjet, Acrylic archival inkjet, White gold leaf on Hahnemüle rag paper, 152.4x109.2cm.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먼저 키키가 우리를 데려가는 시공간은 밤과 우주다. 청동과 알루미늄으로 만든 조각을 감상할 수 있는데, 2m가 넘는 부엉이 조각 옆에는 은하계와 엉켜 붙은 무수한 별들이 형태를 드러낸다. 쉬이 바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재료들이 우주의 무한한 시간을 박제한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한 층 더 올라가면 자연의 생명들이 등장한다. 물줄기 안에서 정령이 솟구치는가 하면 다람쥐,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들이 강 표면 사이를 유영하듯 생기를 뿜어낸다.
작품을 들여다보며 새삼 그의 작품들은 거대한 진리를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관람객을 압도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상과 내면에 여기저기 존재하는 시각언어를 경험의 영역으로 끌어다 놓으며, 관람객에게 구현보다는 ‘체현’에 가까운 감각을 유도한다.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 속 산문이나 시집을 읽고 마음이 동하는 것처럼. 서신으로 현재진행형인 시선에 대해 묻자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Long Night Moon〉, 2023, Aqueous archival inkjet, acrylic archival inkjet, white gold leaf on Hahnemüle rag paper, 152.4x109.2cm.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Long Night Moon〉, 2023, Aqueous archival inkjet, acrylic archival inkjet, white gold leaf on Hahnemüle rag paper, 152.4x109.2cm.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질문지를 읽고 있는 지금, 당신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나?
정원에서 막 제초 작업을 마쳤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자유낙하(Free Fall)»를 마치고 연이어 한국에서 전시를 열게 됐다. 
지난 전시에서는 초기작부터 폭넓게 보여주는 파노라마식 구성을 선보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반면 이번 전시는 최근 몇 년간 작업해왔던 것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긴 세월 작업을 하다 보면 생각이 계속 바뀌기도 하고 시기마다 심취해 있는 것들의 면면이 변화하곤 하는데, 이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어 기대된다.
이번 전시명 또한 직접 지은 걸까? 
그렇다. 봄볕이 지금 현재의 빛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구름이 낀 것처럼 흐린 날들을 보내지만, 봄은 거듭 돌아오고 우리를 새롭게 한다.
층별로 우주, 물처럼 풍경을 누빌 수 있는 전시 구성을 따른다. 
나는 늘 예술가로 존재한다는 것은 마치 정원을 거니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는 항상 어딘가를 둘러보며 감각을 발견하는 경험을 한다. 날마다 각자만의 정원은 역동적이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변화한다. 새싹, 침입종, 예기치 못한 종의 발아 등이 언제나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이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 풍경을 바꾸고, 내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Evening Light〉, 2023, Etching, 47x38.1cm.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Evening Light〉, 2023, Etching, 47x38.1cm.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당신의 아버지가 조각가 토니 스미스(Tony Smith)라는 익히 알려진 사실 이외에 남편이 양봉가라는 점이 흥미롭다. 어떤 영향을 받았나? 
남편은 양봉과 식물의 특성에 대해 무척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에게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배운다.
오랜 시간 뉴요커로 살아온 당신이 이토록 자연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게 새삼스럽다. 
젊은 시절에는 확실히 도시에서 내 또래 지인들과 생활하기를 즐겼다. 점차 나이가 들고 자연을 선호하게 되면서, 마치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아가 시민 의식에까지 생각이 미치곤 하는데, 도시와 교외는 모두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어떤 시민이든 자연에 가시적, 비가시적 파급력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키키 스미스의 대표작으로 〈Pee Body〉, 〈Digestive System〉처럼 1990년대에 선보인 신체를 표현한 조각작품을 떠올린다. 당신이 말했듯이 비토 아콘치(Vito Acconci),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과 같은 작가들처럼 자신의 신체를 쓰지 않고 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선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몸은 사유하는 공간이었다. 내 작업은 퍼포먼스적인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비유적인 재현물로서 신체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업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내 성격에 따른 선택이지, 이상적인 방식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초기 작업에서 색채의 사용이 한정적이었다면 최근 몇 년간 색감이 정말 다채롭게 변화한 게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서도 어떤 작품은 중세 신화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파스텔톤의 사랑스러운 색감이 조화로운 작품도 눈길을 끈다. 
모든 작품은 스스로 어떤 색이어야 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려준다.
 
〈Show〉, Shina plywood and Japanese colored silver leaf, 24.4x33.7x16.2cm, 2023.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Show〉, Shina plywood and Japanese colored silver leaf, 24.4x33.7x16.2cm, 2023. ©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작품에 등장하는 올빼미와 고양이, 비둘기 같은 동물들도 당신의 일상 가까이에 있는 대상인가? 아니면 상상 속에서 비롯된 것인가? 
지척에서 관찰한 동물들에 시선이 닿는다. 지난주에는 큰 나뭇가지를 운반하는 독수리를 보았고, 오늘은 우리 집 마당에 나온 첫 꿀벌을 발견했다. 또, 올해는 태어나 처음 살쾡이를 보게 되었다. 작업에 등장하는 모든 소재는 내가 주위에서 관심 있게 본 것들이다.
당신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뉴욕대와 컬럼비아대에서 학생들에게 수십 년간 인쇄 기술을 가르쳐온 것은 판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라고 읽힌다. 유독 판화의 기법에 천착해온 이유가 무엇인가? 
판화가 언제나 작업의 기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적층하며 구현하는 데 있어 판화의 방법을 참고한다. 조각가였던 나의 아버지 토니 스미스가 규모가 큰 조각을 완성하기 위해 작은 기하학적 모양을 활용하던 방식과 유사하다. 이미지를 하나씩 재료 삼아 그것들을 합쳐서 더 큰 작업을 만든다. 마치 등장인물이 수시로 바뀌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레퍼토리가 있는 극을 올리는 것과 같다.
마치 연극과도 같은 작업의 시작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주로 학생들에게 특정 기술에 대한 시범을 보여주면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 판화에 있어서 특히 그렇다. 이전에 만들어본 적 없는 것을 구현해보려고 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나도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시도할 수 있고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상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손에 쥐어진 것, 덜 익숙한 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활용한 판화의 기법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이번 전시에서 종이 위에 사진을 올려 햇빛에 감광시키는 시아노타이프와 사진과 디지털 작업을 결합한 포토폴리머 기법을 따르는 작업도 볼 수 있다.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르게 되나? 
나는 일상에서 사진을 끝없이, 아주 많이 찍는 편이다. 빛이 굴절되는 방식이 어긋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에 시각적 요소를 추가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어린 시절, 최초의 시각적인 경험은 무엇인가? 
침실 바닥에 묻은 초록색 페인트를 벗겨내려고 했던 것.
 
〈Dark Water〉, 2023, Bronze, 182.9x165.1x71.1cm.©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Dark Water〉, 2023, Bronze, 182.9x165.1x71.1cm.© Kiki Smith, Courtesy of Pace Gallery

작품의 영감은 어떤 계시처럼 받나? 혹은 하고 싶다는 의지에 가깝나?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울림이 있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리고 그 길로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나는 확실히 호기심에 따라 내 길을 걸어왔다.
요즘은 어떤 대상에 호기심을 느끼나? 
최근에 아일랜드 가리비에 매료되어 그것을 소재로 판화를 만들었다. 실물을 스캔하여 컴퓨터상에서 규격을 변경하고, 출력하고, 또 주조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는 수공예적인 면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손을 사용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러한 기법이 흥미로운 이유는 판화가 주로 손을 사용하는 매체인 듯 보이지만 동시에 거리를 두게 만드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당신은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은가? 
아마도 바람처럼 기억되지 않을까.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울림이 있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리고 그 길로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나는 확실히 호기심에 따라 내 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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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안서경
    사진/ 페이스 갤러리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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