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Andreas Kronthaler for Vivienne Westwood, Versace, Ralph Lauren, Miu Miu, Valentino, Loewe, Givenchy, Chanel, Tory Burch, Zero + Maria Cornejo, Balenciaga, Yohji Yamamoto, Dolce & Gabbana, Alexander McQueen, Dior, Louis Vuitton, Marc Jacobs.
리틀 블랙 드레스(이하 LBD), 그러니까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거의 1백 년 전 히트를 친 바 있는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스타일의 대명사가 이번 시즌 강력한 귀환을 알렸다. 1926년 당시 샤넬이 소개한 LBD는 가벼운 크레이프 소재에 무릎 아래 기장으로 만들어진, 단순하고도 활동성이 좋은 긴 소매 드레스였다. 그녀는 자수나 장식 하나 없는 드레스에 진주 목걸이 여러 개를 칭칭 감아 연출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남성복에서 차용한 디테일이었다.


존슨, 미셸 윌리엄스, 스칼릿 조핸슨, 줄리언 무어, 셀레나 고메즈의 스타일리스트 케이트 영은 핑크에서 블랙으로 건너온 최근의 흐름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 셀러브리티 사진을 소비하는 방식을 보면 납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간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화제가 된 의상 대부분은 굉장히 독특하고 엉뚱했죠. 몇 년 동안 화려한 프린트와 컬러, 로고만 지속적으로 접했기 때문에 요즘 SNS 피드에 등장하는 블랙 드레스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FIT 뮤지엄의 디렉터이자 큐레이터, 〈The Black Dress〉의 저자 발레리 스틸도 이러한 의견에 동의한다. “폭주하는 컬러에 지친 사람들이 블랙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있어요.” 실제로 스틸은 LBD가 세상에 처음 등장해 사랑을 받았던 때가 실은 컬러가 정점을 찍었던 시기였다고 말한다. “샤넬은 푸아레의 컬렉션에 등장한 파란색과 오렌지, 체리 레드 등 눈부신 컬러들이 토할 것처럼 느껴진다고 묘사했어요.” 그녀가 애시드 컬러의 네오 클래식 실루엣을 선보였던 20세기 초 쿠튀리에 폴 푸아레를 언급하며 말했다.
“LBD는 가장 실용적인 아이템이죠. 모든 상황에 잘 맞으니까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드레아 크론탈러의 말이다. 이러한 성향은 블랙이 가진 다면적이고 함축적 이미지 때문이라고 스틸은 설명한다. “검은색은 패션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다층적인 컬러죠. 그래서 다른 어떤 컬러보다도 많은 의미를 지녀요. 이런 점이 LBD가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다양한 스타일로 변모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LBD는 시크함의 모든 것이죠.”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튜 M. 윌리엄스가 말한다. 실제로 그는 2023년 가을 컬렉션에서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헵번을 오마주한 드레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마치 디너 파티에서 입어야 할 법한 원 숄더 드레이프 맥시 드레스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매우 가벼운 나일론 태피터 원단으로 완성돼 실용성을 강조한 드레스였다.
“위베르 드 지방시가 영화를 위해 디자인한 것보다 더 나은 드레스를 만드는 건 불가능해요.” 매튜는 인정한다. “그 장면은 언제나 상징적인 장면이 될 거예요. 하지만 60년의 시간이 흘렀고, 저는 그때의 정신을 오늘날의 언어를 통해 재해석하고 싶었습니다.”
배우 쇼넷 르네 윌슨이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로 생애 첫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은 날, 스타일리스트 솔란지 프랭클린은 그녀에게 마크 제이콥스 블랙 페이턴트 가죽 드레스를 입히고 화이트 오페라 장갑과 함께 플랫폼 힐을 신겼다. “오드리 헵번은 옷장에 이런 게 없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녀가 이 드레스를 입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우 재지 비츠, 세레나 윌리엄스, 트레이시 엘리스 로스와 일해온 프랭클린이 말했다. “물론 딱 이런 신발을 신진 않았을 수 있지만, 이건 꼭 입었을 것 같아요.”
“블랙 드레스의 재밌는 점은 매번 전혀 다른 느낌으로 연출할 수 있다는 거예요.” 노출된 브라와 작게 부푼 헴라인이 독특한 LBD를 선보였던 마크 제이콥스의 2023 F/W 컬렉션을 언급했다. “정말 짧고 스쿨걸 느낌이 강했지만, 조금만 비율을 바꾸면 매우 클래식한 칵테일 드레스로도 변신이 가능하니까요.” 실제로 이번 시즌 많은 드레스가 속바지와 함께 선보였고, 이는 팬츠 위에 미니 드레스를 매치하는 브랜드인 에이 포츠의 스타일링과 흡사했다.


“LBD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걸 도전해 보는 걸 즐기고 있어요.” 짧은 헴라인의 팬을 자청하는 라콴 스미스가 말했다. 그는 뉴욕의 레인보룸에서 열린 2023 F/W 컬렉션에서 턱시도 라펠을 컷아웃해 LBD와 믹스하거나 원 숄더 드레스에 차이나 칼라를 덧대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는 컬렉션에서 느껴지는 매혹적인 분위기와 향수를 자극하는 매력에 동의하며 드라마 〈다이너스티〉, 영화 〈007 시리즈〉의 본드걸과 80년대 클럽 패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LBD, 리틀 블랙 드레스는 단순하거나 길 수도, 폭신하고 반짝이거나 짧을 수도 있으며 누가 입어야 한다는 등의 전형적인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LBD는 다른 아이템과도 잘 어울리는 매우 실용적인 아이템이죠.” 니나 리치의 2023 F/W 컬렉션을 통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해리스 리드 또한 혁신적인 LBD를 선보였는데 그것은 블랙 폴카 도트 캣수트 위로 거대한 리본이 장식된 폴카 도트 미니 드레스였다.
“리틀 블랙 드레스야말로 모든 여성, 남성, 논 바이너리까지 모두가 옷장에 가지고 있어야 할 스타일의 DNA와 같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