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블랙 드레스의 존재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리틀 블랙 드레스의 존재감

런웨이와 레드 카펫에서 다시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BAZAAR BY BAZAAR 2023.10.05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Andreas Kronthaler for Vivienne Westwood, Versace, Ralph Lauren, Miu Miu, Valentino, Loewe, Givenchy, Chanel, Tory Burch, Zero + Maria Cornejo, Balenciaga, Yohji Yamamoto, Dolce & Gabbana, Alexander McQueen, Dior, Louis Vuitton, Marc Jacobs.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Andreas Kronthaler for Vivienne Westwood, Versace, Ralph Lauren, Miu Miu, Valentino, Loewe, Givenchy, Chanel, Tory Burch, Zero + Maria Cornejo, Balenciaga, Yohji Yamamoto, Dolce & Gabbana, Alexander McQueen, Dior, Louis Vuitton, Marc Jacobs.

작년 이맘때 핑크가 패션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색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밀레니얼 핑크의 말린 장미 컬러부터 발렌티노의 농밀한 푸크시아 핑크 컬러까지. 핑크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고도 견고했다. 여기에 바비 코어도 한몫했다. 올여름, 마고 로비가 핫 핑크 컬러의 시그너처 룩을 입고 패션 인형으로 등장한 영화 〈바비〉의 흥행이 예견되면서 세계적인 컬러 연구소 팬톤에서는 밝은 핑크가 섞인 보라색 ‘비바 마젠타’를 2023년 올해의 컬러로 선정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영화 〈바비〉의 월드 프리미어 상영식을 위해 핑크 콜벳 앞에 선 마고 로비는 시퀸과 튤 소재로 완성된 스키아파렐리의 블랙 커스텀 뷔스티에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룩에서 핑크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모슬린 스카프뿐이었다. 바비인형도 블랙을 입는다니!
리틀 블랙 드레스(이하 LBD), 그러니까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거의 1백 년 전 히트를 친 바 있는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스타일의 대명사가 이번 시즌 강력한 귀환을 알렸다. 1926년 당시 샤넬이 소개한 LBD는 가벼운 크레이프 소재에 무릎 아래 기장으로 만들어진, 단순하고도 활동성이 좋은 긴 소매 드레스였다. 그녀는 자수나 장식 하나 없는 드레스에 진주 목걸이 여러 개를 칭칭 감아 연출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남성복에서 차용한 디테일이었다.
 
(왼쪽부터) 엘르 패닝, 카일리 제너, 다코타 존슨.(왼쪽부터) 헤일리 비버, 마고 로비, 릴리 로즈 뎁.
LBD는 이후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의 추상적이고 구조적인 볼륨 드레스, 크리스찬 디올의 허리를 강조한 A 라인 스커트, 콤데 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가 선보인 몸 전체를 집어삼키는 디자인,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드레이프 코르셋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 10년마다 진화를 거듭하며 세련된 실루엣을 재창조하는 하얀 캔버스가 되었다. 일례로 지난 5월에 열린 칸 영화제에서 커스틴 던스트는 샤넬의 1995년 리조트 컬렉션의 블랙 티어드 시폰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릴리 로즈 뎁은 이틀 동안 프랑스 칸의 크루아세에서 무려 세 벌의 각기 다른 샤넬 미니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는데 1994년 가을 컬렉션의 튜브톱 LBD와 블랙 컬러의 트위드 LBD, 그리고 시퀸 장식으로 뒤덮인 드레스를 착용했다. 그런가 하면 엘르 패닝과 카일리 제너는 그레이스 켈리를 연상케 하는 보테가 베네타의 우아한 블랙 드레스를 입고 칸과 파리에서 포착되었다. 한편 다코타 존슨은 그 유명한 다이애나비의 블랙 리벤지 드레스를 떠올리게 하는 보디라인이 드러난 베르사체의 구조적인 블랙 드레스를 입고 밀라노를 활보하기도.  
존슨, 미셸 윌리엄스, 스칼릿 조핸슨, 줄리언 무어, 셀레나 고메즈의 스타일리스트 케이트 영은 핑크에서 블랙으로 건너온 최근의 흐름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 셀러브리티 사진을 소비하는 방식을 보면 납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간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화제가 된 의상 대부분은 굉장히 독특하고 엉뚱했죠. 몇 년 동안 화려한 프린트와 컬러, 로고만 지속적으로 접했기 때문에 요즘 SNS 피드에 등장하는 블랙 드레스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FIT 뮤지엄의 디렉터이자 큐레이터, 〈The Black Dress〉의 저자 발레리 스틸도 이러한 의견에 동의한다. “폭주하는 컬러에 지친 사람들이 블랙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있어요.” 실제로 스틸은 LBD가 세상에 처음 등장해 사랑을 받았던 때가 실은 컬러가 정점을 찍었던 시기였다고 말한다. “샤넬은 푸아레의 컬렉션에 등장한 파란색과 오렌지, 체리 레드 등 눈부신 컬러들이 토할 것처럼 느껴진다고 묘사했어요.” 그녀가 애시드 컬러의 네오 클래식 실루엣을 선보였던 20세기 초 쿠튀리에 폴 푸아레를 언급하며 말했다.
“LBD는 가장 실용적인 아이템이죠. 모든 상황에 잘 맞으니까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드레아 크론탈러의 말이다. 이러한 성향은 블랙이 가진 다면적이고 함축적 이미지 때문이라고 스틸은 설명한다. “검은색은 패션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다층적인 컬러죠. 그래서 다른 어떤 컬러보다도 많은 의미를 지녀요. 이런 점이 LBD가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다양한 스타일로 변모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왼쪽부터) 헤커스틴 던스트, 쇼넷 르네 윌슨, 갤 가돗.(왼쪽부터) Luar, Nensi Dojaka, Nina Ricci.
LBD의 가장 유명한 예는 아마도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홀리 골라이틀리 역)이 오프닝 장면에서 입은 지방시의 블랙 새틴 드레스일 것이다. 그녀는 여기에 블랙 오페라 장갑과 선글라스, 티아라를 함께 매치했다. 지난봄, 뉴욕 5번가에 위치한 티파니 플래그십 매장의 재오픈 파티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바로 초대된 손님들이 헵번의 시그너처 룩을 각자 다르게 오마주한 채 등장한 것. 그 중 눈길을 끈 인물은 몸에 꼭 맞는 베르사체의 보디콘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헤일리 비버와 로에베의 구조적인 드레스를 입은 갤 가돗이었다.
“LBD는 시크함의 모든 것이죠.”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튜 M. 윌리엄스가 말한다. 실제로 그는 2023년 가을 컬렉션에서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헵번을 오마주한 드레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마치 디너 파티에서 입어야 할 법한 원 숄더 드레이프 맥시 드레스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매우 가벼운 나일론 태피터 원단으로 완성돼 실용성을 강조한 드레스였다.
“위베르 드 지방시가 영화를 위해 디자인한 것보다 더 나은 드레스를 만드는 건 불가능해요.” 매튜는 인정한다. “그 장면은 언제나 상징적인 장면이 될 거예요. 하지만 60년의 시간이 흘렀고, 저는 그때의 정신을 오늘날의 언어를 통해 재해석하고 싶었습니다.”
배우 쇼넷 르네 윌슨이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로 생애 첫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은 날, 스타일리스트 솔란지 프랭클린은 그녀에게 마크 제이콥스 블랙 페이턴트 가죽 드레스를 입히고 화이트 오페라 장갑과 함께 플랫폼 힐을 신겼다. “오드리 헵번은 옷장에 이런 게 없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녀가 이 드레스를 입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우 재지 비츠, 세레나 윌리엄스, 트레이시 엘리스 로스와 일해온 프랭클린이 말했다. “물론 딱 이런 신발을 신진 않았을 수 있지만, 이건 꼭 입었을 것 같아요.”
“블랙 드레스의 재밌는 점은 매번 전혀 다른 느낌으로 연출할 수 있다는 거예요.” 노출된 브라와 작게 부푼 헴라인이 독특한 LBD를 선보였던 마크 제이콥스의 2023 F/W 컬렉션을 언급했다. “정말 짧고 스쿨걸 느낌이 강했지만, 조금만 비율을 바꾸면 매우 클래식한 칵테일 드레스로도 변신이 가능하니까요.” 실제로 이번 시즌 많은 드레스가 속바지와 함께 선보였고, 이는 팬츠 위에 미니 드레스를 매치하는 브랜드인 에이 포츠의 스타일링과 흡사했다.
 
(왼쪽부터) Fforme, A. Potts, LaQuan Smith, Puppets and Puppets. (왼쪽부터) Puppets and Puppets, Tove, Conner Ives.
블랙은 모든 것을 신선하고 모던하게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을 갖고 있다. 올가을 선보인 디올의 블랙 레이스, 발렌티노의 시폰, 퍼펫츠 앤 퍼펫츠의 태운 듯한 벨벳, 넨시 도자카의 속이 훤히 비치는 튤 드레스를 보라. Y2K를 연상시키는 아이템일 수 있지만 실제로 입고 싶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번 시즌 토리 버치는 코르셋에 사용되는 시어한 메시를 잘라 LBD를 만드는 등 블랙기에 가능한 해체주의적 실험을 했다. 그녀는 몸에 패브릭을 한 겹 두르고 가장자리는 그대로 남겨둔 채 엉덩이 부분에 부드러운 패딩을 감싸 허리를 강조했다. “디자이너들에게 LBD는 여러 실험을 위한 최고의 캔버스가 되어주죠. 미니멀하거나 로맨틱해 보일 수 있고 편안해 보이거나 날카롭게 세련되어 보일 수도 있잖아요. 무얼 하든 과한 느낌이 전혀 없어요.” 버치가 말했다.
“LBD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걸 도전해 보는 걸 즐기고 있어요.” 짧은 헴라인의 팬을 자청하는 라콴 스미스가 말했다. 그는 뉴욕의 레인보룸에서 열린 2023 F/W 컬렉션에서 턱시도 라펠을 컷아웃해 LBD와 믹스하거나 원 숄더 드레스에 차이나 칼라를 덧대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는 컬렉션에서 느껴지는 매혹적인 분위기와 향수를 자극하는 매력에 동의하며 드라마 〈다이너스티〉, 영화 〈007 시리즈〉의 본드걸과 80년대 클럽 패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LBD, 리틀 블랙 드레스는 단순하거나 길 수도, 폭신하고 반짝이거나 짧을 수도 있으며 누가 입어야 한다는 등의 전형적인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LBD는 다른 아이템과도 잘 어울리는 매우 실용적인 아이템이죠.” 니나 리치의 2023 F/W 컬렉션을 통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해리스 리드 또한 혁신적인 LBD를 선보였는데 그것은 블랙 폴카 도트 캣수트 위로 거대한 리본이 장식된 폴카 도트 미니 드레스였다.
“리틀 블랙 드레스야말로 모든 여성, 남성, 논 바이너리까지 모두가 옷장에 가지고 있어야 할 스타일의 DNA와 같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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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Alison S. Cohn
    번역/ 이민경
    사진/ⓒ Jacopo Raule/Gc Images/Getty Images,
    Mega/Gc Images/Getty Images,
    tefania M. D’Alessandro/Getty Images for Martini,
    Anthony Harvey/Shutterstock,
    Cindy Ord/Getty Images for Tiffany & Co.,
    Marc Ninghetto/Chopard,
    Daniele Venturelli/Wireimage,
    Christopher Polk/WWD Via Getty Images,
    ⓒ Ammar Jamal(A. Potts),Christophe Berlet(Fforme),
    Don Ashby(Laquan Smith, Puppets And Puppets),
    각 브랜드 제공(런웨이)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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