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토모 나라, 순수한 예술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요시토모 나라, 순수한 예술가

요시토모 나라는 자신의 주먹만 한 세라믹 작품을 두고 “이 작고 하얀 물질 안에도 큰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말한다. 오랜 명성 안에서도 예술가이기보다는 꾸준한 작업자이길 바라는 그는 무엇보다 순수한 형태의 세라믹으로 그 의지를 전한다.

BAZAAR BY BAZAAR 2023.10.05
 
〈Fighting Against Gravity〉, 2021, Ceramic, 59.5x61.5x66.4cm. No. 88675.

〈Fighting Against Gravity〉, 2021, Ceramic, 59.5x61.5x66.4cm. No. 88675.

2005년 로댕갤러리에서 연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 떠오르네요. 〈나라 노트〉 〈작은 별 통신〉 같은 저작물과 요시모토 바나나의 단행본 표지 일러스트 등으로 친근하던 시기였어요. 서울에서 여는 18년 만의 개인전이라니 정말 오랜만입니다. 
몇 년 전 LA카운티미술관에서 연 전시가 팬데믹으로 인해 차질을 빚었어요. 설치는 끝났는데 일 년 동안 관람객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어진 순회 전시에도 영향이 갔고요. 덕분에 일 년 동안 빈 시간이 생기면서 여행도 하고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어요. 무리하게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고 스스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고요. 전시나 작품을 만드는 것에 흥미가 조금씩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 활동을 해야 된다는 것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어요. 전시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팬데믹 기간에 알게 된 거죠.
≪Ceramic Works≫라는 직설적인 제목처럼 도자 작업을 선보이는데요. 
자유롭게 만들어가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제 한번 발표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제작 연대의 폭이 넓어요. 2층에 있는 작품들은 창고 안에 잠들어 있던 걸 가지고 온 겁니다.(웃음)
2007년 교토 외곽 산골마을인 시가라키에서 처음 도자 작업을 만났습니다. 흙을 만지고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레지던시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느꼈던 그때의 경험이 작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텐데요. 
세라믹 작업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 레지던시 요청을 받았을 때 나 자신을 바라보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어요. 저만 초보였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된 기분이었죠. 문득 도자기를 만든 적은 없지만 점토로 무언가를 만든 경험 자체는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여기에는 굽는다와 굽지 않는다의 차이가 있어요. 세라믹 작업을 해보니 굽기 전과 후의 결과물 차이가 많이 나서 좀 충격이었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유약이 매력적이고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걸 알지만 유약을 바르지 않고 초벌로 굽는 형태의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예로서의 완성품이 아닌, 처음 만든 모습을 유지한 형상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업을 마치고 나서는 모두가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예술 이야기만이 아닌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습니다. 그런 삶의 방향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휴대폰으로 글을 썼다 지우고, 그림을 그리다 버튼 하나로 실수를 되돌릴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흙을 만지는 건 어쩌면 정반대의 행위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도구가 필요하죠. 그것이 펜이든 붓이든 이미 ‘잡는다, 든다, 그린다’처럼 사람과 그림 사이의 행위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도자기는 흙을 잡는 순간 시작됩니다. 조금 하면 다음이 보여서 자동적으로 표현되는 느낌. 오히려 그림을 그리기 전 드로잉이나 스케치하는 시간에 도자기는 이미 하나가 완성되는 거죠.
 
손에 쥘 수 있을 만한 작은 세라믹 작업들.

손에 쥘 수 있을 만한 작은 세라믹 작업들.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지명과 닿게 됩니다. 홋카이도의 토비우에서 만든 손바닥 크기의 작품은 다분히 향토적이고요. 지역과 역사에 관한 의식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예술은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있지만 사실 예술하는 사람들 자체의 세계는 매우 좁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안에 있으면 얼마나 좁은지를 모르게 돼요. 저도 이런저런 곳을 가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예술의 불모지에 갈 때 더 느끼고 배우는 것들이 많았어요. 항상 보는 것도 이야기하는 것도 똑같은 곳에 있다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뜻밖의 경험을 하면서 동심을 찾는다든지 더 순수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공간이든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내 방인 것처럼 꾸미는 능력이 있으시다고요.(웃음) 페이스갤러리를 보고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지 바로 떠올랐나요? 
뉴트럴한 공간이라 더욱 재미있었어요. 하루 만에 설치 작업을 마쳤습니다.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 어쩌다 학교에 가서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을 열었을 때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당시로 소환할 수 있을 만한 물건으로 곰인형을 놓았는데 우리가 나이를 먹었듯 인형도 손때 묻은 오래된 인형을 놓았어요. 실제로 폐교에서 가져온 목재를 써서 교단을 만들었고, 그 자체가 타임머신이 되어 오래전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전시 자체는 그 시대의 것은 아니지만 장치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살 거면 이대로 가져갔으면 좋겠네요.(웃음)
2층 전시실은 검은색 페인팅을 한 작업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도자기에 그림과 메시지가 더해지면서 두 영역이 합쳐지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도자기를 만들고 그림까지 그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려 시가라키에서 알게 된 친구가 도자기를 만들어주게 되었어요. 어떤 형태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아무거나 괜찮다고 대답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확실한 요청을 하는데 아무거나 괜찮다고 하니까 오히려 그게 더 곤란한 거예요. 친구는 고민을 거듭해 1단, 2단, 표주박 모양의 여러 시도를 해줬고 일반적인 형체가 아닌 것들을 보니 뭘 그리고 써야 할지 바로 떠올랐습니다. 한적한 마을인 시가라키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 동안 동네 아이들과 놀 때가 많아요. 그럴 땐 방금 놀던 아이의 얼굴이 작품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함께 전시되는 드로잉은 도자 작업과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3층 전시실에 있는 드로잉은 모두 관련성이 있어요. 보자마자 알 수 있도록 배열해두었습니다. 스케치를 하고 세라믹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작품을 만들어놓고 반대로 스케치한 것들도 있어요.
 
세라믹 작업과 밀접한 드로잉들이 걸려 있는 전경.

세라믹 작업과 밀접한 드로잉들이 걸려 있는 전경.

펜이든 붓이든 이미 ‘잡는다, 든다, 그린다’처럼 사람과 그림 사이의 행위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도자기는 흙을 잡는 순간 시작됩니다.
 
LA카운티미술관에서는 소장품 LP를 전시했었죠. 이번 전시에 직접 가져온 인형들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어렸을 때 돈이 없어서 마음대로 살 수 없었던 걸 지금 사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 당연히 인형보다는 레코드를 샀거든요. 글쎄요. 왜 인형일까요?
작업실이자 생활 공간은 도치기에 있고 오피스는 도쿄와 뉴욕에 있습니다. 도예 작업장이 있는 시가라키에는 어떤 마음으로 향하나요? 
저는 심오하게 작업을 하러 가는 건데 도착하자마자 마을 친구들이 바비큐 파티를 해줍니다.(웃음)  뭐 하나가 너무 재미있어질 때, 이대로라면 몹쓸 방향으로 갈 것 같을 때 떠나야 해요. 올해 들어 캔버스에 그린 그림은 두 작품뿐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건 즐겁고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좋습니다.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압박감을 느껴요. 작품에 가격이 붙고 가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어요. 보통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저는 좀 힘드네요. 평생 자유롭게 작업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세라믹은 언제든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을 ‘큰 머리 소녀’의 형상과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귀여움의 표상이 아니라 현재와 발맞추어 나아가는 요시토모 나라 그 자체로 보입니다. 청동 작업 큰 머리 소녀는 단조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손자국 하나 하나가 애처로움과 분노의 언어로 보이고, 최근의 회화는 중첩되는 색으로 인물의 내면을 더 내세우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자화상이라고 말해왔는데 이제는 저와 일체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여자아이를 그렸었는데 점점 연령이 올라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제가 유치원생까지 돌아갈 수 있었다면 지금은 저도 나이가 들면서 고등학생 정도밖에 돌아가지 못해요. 그러고 보니 인형을 살 수 있는 것도 제가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네요. 레코드도 CD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의 또래들은 아예 돌아갈 수 없어 음악 자체를 안 듣는 친구도 많아요. 아이들과도 친해질 수 있고 젊은 세대나 연장자와도 친해질 수 있는 폭넓음이 작품에도 계속 반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전시의 단면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일부분만 보는 건 조금 슬프다”라고 말했어요. 어떤 모서리만 평가받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자 특징일 수도 있는데요. 
비슷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이 발이 빨라서 달리기를 했고 잘해서 금메달을 따고 나면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계속 좋은 결과만을 반복해나가게 돼요. 사실 그 사람은 다른 걸 하고 싶고 다른 것도 잘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거죠. 제가 금메달을 따보진 않았지만 약간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요.(웃음)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슈퍼플랫’이나 ‘가와이’ 문화로 포괄하는 평론부터 판매력을 갖춘 세계적인 작가의 위치까지. 가장 강렬하게 반론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요? 
전부 틀렸어요.(웃음)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대학생 때 그린 그림부터 여러 평가를 받았어요. 그때는 ‘이게 뭐야?’ 하던 사람들이 10년, 20년 후에는 칭찬을 하기 시작하는 거죠. “역시 나라 군은 옛날부터 달랐어”라면서.(웃음)  
 
텅 빈 교실을 모티프로 만든 전시장에서 요시토모 나라.

텅 빈 교실을 모티프로 만든 전시장에서 요시토모 나라.

15년 전 즈음 서울의 허름한 공연장에서 작가님을 본 적이 있어요. 여전히 작업과 음악은 떼어놓을 수 없나요? 
새로운 음악도 챙겨 듣는 편이지만 불안할 때는 옛날 음악을 듣게 됩니다.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작업에 몰두했을 때 예전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으면 안심이 되곤 해요. 옛 친구를 만나거나 다시 나를 찾는 그런 느낌이에요.
작품명에 무제나 번호를 붙이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제목의 비중이 꽤 높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작명 센스가 빛나기도 하고요. 
스스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아마도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제목을 붙이는 데 더 재능이 있을지도 몰라요.(웃음) 세라믹 작업도 그렇고 결과적으로 가장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창고형 작업실 등 높고 커다란 곳에서 작업했던 인상이 있습니다. 지금 도치기의 작업실은 아주 한적한 풍경 아래 있는데요.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나요? 
주변에 집이 세 채 있는데 사실은 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더 좁은 곳이면 좋겠고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작업실을 왔다갔다 달리면서 그릴 정도의 체력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못 해요. 오히려 나이가 든 후에 모든 걸 쏟아부으면서 작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무리하면서 작업하고 싶지 않아요. 90%까지는 확실히 내지만 100% 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자코메티가 집에 불이 나면 작품보다 고양이를 안고 도망갈 거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데요. 저도 집에 불이 나면 도망칠 수 있는 힘은 남겨놓고 싶어요. 그래서 자주 누워있습니다.(웃음) 마티스도 늙어가면서 변화된 작품을 보여준 것처럼 저도 노화와 맞는 자연스럽게 활동을 하고 싶어요.
주변에서 자신만의 것을 캐치하는 레이더가 있다고 했는데 서울에서는 무엇을 잡았나요? 
남대문의 아주머니 전문 옷가게에서 어머니 드릴 ‘몸빼’를 샀어요. 꽃무늬가 아주 강렬한 걸로.
 
※ ≪Ceramic Works≫는 페이스갤러리에서 10월 21일까지 열린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이번 전시를 통해 18년 전 만났던 큰 머리 소녀들과 반갑게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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